1. 우주의 난제, 암흑 물질
어느 시대나 난제는 있기 마련이다. 암흑 물질의 정체를 밝히는 작업은 21세기 천문학이 풀어야 할 난제 중 난제가 되었다. 중력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무엇, 암흑 물질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은 오랜 역사가 있다. 관측한 별의 속도나 분산 값이 관측된 물질의 양으로부터 계산한 값과 맞지 않을 때, 아직 관측하지 못한 물질이 존재할 것이라는 추론을 하곤 했다. 스위스의 천문학자인 프리츠 츠위키는 은하단 규모에 서 암흑 물질의 존재를 이야기했다. 은하단 소속 은하들의 속도로부터 계산한 은하단 질량과 은하의 밝기와 개수로부터 결정한 은하단 질량 사이에 차이가 생겼다. 이 차이를 메우는 암흑 물질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력의 영향을 받는 관측값과 눈에 보이는 물질에서 얻은 결괏값 사이의 차이는 종종 발생한다. 이 괴리를 설명하기 위해 정체는 중력적인 작용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는 어떤 존재를 임의로 설정하는 것은 천문학의 오래된 전통이다. 암흑 물질도 그런 전형적인 추론에서 탄생했다.
2. 암흑 물질의 증거
1970년대가 되면서 암흑 물질이 존재한다는 증거들이 많이 나타나게 시작했다. 앞서 베라 루빈은 광학 스펙트럼 관측으로 얻은 은하의 회전 속도 곡선을 살펴봤다. 은하의 눈에 보이는 물질(즉 별들)로 추정한 은하의 질량을 은하의 회전 속도 곡선으로 계산한 은하의 질량과 비교했다. 차이가 있었다. 후자가 훨씬 컸다.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직 그 정체는 모르지만 갖고 있는 무언가가 존재해야 했다. 암흑 물질의 등장이다.
눈에 보이는 물질이 아닌 중력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물질을 암흑 물질이라고 이름 붙였다.
전파 망원경을 여러 대 연결해 하나의 거대한 전파 망원경처럼 구성해 관측하는 전파 간섭계가 발달하면서 은하의 관측도 용이해졌다. 나선 은하의 바깥쪽까지 멀리 뻗어 있는 중성 수소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관측할 수 있게 되었다. 루빈의 관측은 별들이 존재하는 은하의 안쪽 부분에 간섭계 전과 망원경으로는 은하의 바깥쪽을 탐색할 수 있었다. 관측된 은하의 회전 속도 곡선은 은하의 바깥쪽에서도 주로 평평한 모습을 보였다. 은하의 바깥쪽은 별들의 밀도가 낮다. 주로 중성 수소 같은 가스로만 이루어져 있다. 질량이 작은 영역이다. 눈에 보이는 별과 가스의 양으로 계산한 중력장으로 재구성한 은하의 회견 속도 곡선은 안쪽에서 제일 큰 값을 보이고 바깥으로 갈수록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간섭계 전파 망원경으로 관측한 은하의 회전 속도 값은 바깥쪽에서도 큰 값을 유지했다. 은하의 바깥 영역에 큰 회전 속도 값을 유지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질량이 있어야만 한다는 의미다.
한 네덜란드의 대학교 천문 학과는 간섭계 전파 망원경을 사용한 은하 회전 속도 곡선 관측의 중심지였다. 이를 바탕으로 나선 은하에서의 암흑 물질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떤 박사 학위 논문에도 나선 은하의 회전 속도 관측이 포함되어 있다. 개별 은하에 대한 관측만 아니라 은하단에 속한 나선 은하의 관측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관측으로부터 나온 결과는 나선 은하 내에 암흑 물질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줬다. 은하의 바깥쪽에서도 속도가 줄어들지 않는 평평한 회전 속도 곡선은 여전히 암흑 물질의 존재를 보여 주는 가장 강력한 관측상 증거로 남아 있다.
은하단에 속한 은하들의 속도 분포도 은하단 크기에서 암흑 물질이 존재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지지하고 있다. 은하단에 의한 중력 렌즈 효과 관측이 활발해지면서 중력 렌즈를 일으키는 주체인 은하단의 전체 질량을 계산하는 독립된 관측 도구를 갖게 됐다. 이렇게 계산한 은하단의 질량은 개별 은하의 눈에 보이는 물질의 양을 더한 질량과 큰 차이를 보였다. 은하단에서의 암흑 물질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관측 결과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3. 그 외의 다양한 증거
영국 왕립천문학회 <월간 보고> 2020년 3월 호에 흥미로운 논문이 한 편 실렸다. 영국의 대학 칼리지 런던 소속 연구팀이 쓴 '약한 렌즈 데이터에서 딥 러닝 암흑 물질 지도 재구성'이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딥러닝을 활용해 중력 렌즈 관측 자료로부터 암흑 물질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활용해 방대한 관측 자료로부터 의미 있는 결과를 추출하는 것은 이제 거의 상식이 되었다. 그동안 미처 건드리지 못했던 막대한 양의 관측 자료를 인공 지능 알고리즘의 도움으로 살펴본다면 훨씬 더 체계적으로 암흑 물질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한 우주 망원경 자료들도 암흑 물질이 존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플랑크 우주 망원경이 관측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암흑 물질은 우주 전체의 물질 에너지 총량의 26퍼센트를 차지한다. 눈에 보이는 물질이 5퍼센트를 차지하고 나머지 69퍼센트는 암흑 에너지의 몫이다. 다른 관측에서는 조금 다른 결론에 도달하기도 하지만 암흑 물질의 비율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앞서 언급한 관측과는 다른 방식의 독립된 관측을 통해서도 거시적인 스케일에서 암흑 물질의 존재가 확인된다. 암흑 물질이 존재해야 하는 근거는 다양한 층위의 관측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우주의 거대 구조물로부터 은하에 이르기까지 그 형성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에서도 현재 우주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암흑 물질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다른 여러 독립된 우주론적 관측에서도 비슷한 결론을 내고 있다. 가상 입자가 포착되고 암흑 물질의 정체로 판명된다면 우주론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고 또 우주에서 물질의 형성 이론도 새롭게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21세기는 암흑 물질의 정체를 찾아가는 긴 여정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고 우리는 그 과정을 동시 대적으로 따라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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